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화조 사건 (문단 편집) == 후유증 == 김정일은 자신이 직접 억울하게 당한 희생자의 누명을 벗겨준다는 명목으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던 심화조 피해자들을 최고사령관 훈령으로 석방시켰다. 그러나 이미 커다란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조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정이 풍비박산된 것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정신질환을 앓거나 중병에 걸렸으며, 이미 피해자들이 살았던 예전의 거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지 오래되었기에 집단 거처와 쌀과 기름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은 가족들과의 이별과 가정의 붕괴였다. 기혼자들의 경우 배우자들이 [[이혼]]하여 재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 이혼이었다. 이들 역시 이혼을 거부했다면 수용소행을 피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수용소에서 석방되는 사람들을 나름 위해준답시고 떨어진 김정일의 명령. 바로 "원상복귀시키라우!" 원상복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수용소에 끌려가기 이전의 상황으로 복귀를 말한다. 이를 위해 배우자는 현재 재혼한 사람과 강제로 헤어지고 수용소에서 돌아온 전 배우자랑 다시 결혼한 상태가 되어 한 집에 같이 살아야 했는데.. 명령 하나는 쉬울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지 않아서 수용소에서 돌아온 사람은 ''''자신은 힘들게 수용소에서 배우자를 그리며 살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배우자는 재혼해서 잘살고 있더라''''라며 배우자에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반대로 난데없이 원래의 배우자랑 반강제로 헤어지고 재혼하다 다시 재혼한 사람과 헤어지고 원래 배우자를 맞이하게 된 사람은 '''원래 배우자가 살아 돌아와서 기쁘긴 한데 재혼했던 배우자와의 감정도 남아있는 상태'''라는 두 사람 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끝내는 이혼에 이르는 가정이 있었다 하니 그리스 희곡에나 나올 상황이 수천년 이후 북한에서 벌어진 셈. 피창린의 경우는 아들 3형제가 타살당하는 비극을 당해야 했다. 서윤석은 너무나도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나머지 [[봉화병원]]에 입원 중인데 간호원이 [[주사]]를 들고 다가서면 "선생님, 제발 주사는 놓지 말아 주십쇼, 다 실토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정신이상이 되어버렸다. 한편, 김정일은 자신이 심화조의 전횡으로부터 인민들을 구원했다며 스스로를 인민의 구원자로 포장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이에 생존자들을 석방시킨 김정일을 칭송한다는 내용의 영화가 만들어져 북한 각지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존자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공권력의 잔인한 가혹행위가 알려지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더 큰 문제는 측근들이 김정일을 불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심화조 사건은 그만큼 극도로 잔인하였고 북한 내부에 미친 충격도 컸다. 아무리 김정일에게 충성해도 언제 피의 숙청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북한 권력층은 분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주체사상]]으로 유지되던 김일성 체제가 분열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김정일의 무자비한 숙청 때문이었다. 심화조 사건을 통해 김정일은 내부 단속에 성공하였으나 결국 더 큰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2000년부터 죽는 날까지 권력을 놓치면 죽게 될 것이라는 불안과 의심에 빠지게 된 김정일은 군부를 계속 우대하는 동시에 견제하였다. 그리고 김정일은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본격적인 [[선군정치]]를 내세우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